만경두씨(萬頃杜氏) 두경승 장군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9/07/17 [07:07]

만경두씨(萬頃杜氏) 두경승 장군

새만금일보 | 입력 : 2019/07/17 [07:07]



최근 김제시 만경읍에서 두릉두씨(杜陵杜氏) 두경승 장군의 비석 제막식이 있었다. 만경두씨(萬頃杜氏)라고도 불리는 두릉두씨(杜陵杜氏)의 본관 두릉(杜陵)은 중국에 있는 지명으로 장안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오늘날 산서성에 속해 있다.

시조는 두경녕(杜慶寧)이다. 그러나 두교림(杜橋林)을 시조로 하는 계통도 있다. 두경녕은 고려 목종 때 우사관(右司官)을 지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올 때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앞 바다로 들어왔기 때문에 만경두씨(萬頃杜氏)라고도 한다.

두경녕은 유명한 시인 두보(杜甫)의 후손이다. 그는 송나라 태종 때 병부상서를 지냈다. 왕위 계승 문제에 관해 상소를 올려 직간하다가 진종에게 미움을 받아 소주자사(蘇州刺史)로 좌천되었다. 결국 아들인 중서사인(中書舍人) 두지건(杜之建)과 우습유(右拾遺) 두지봉(杜之逢) 형제를 데리고 정처 없이 배를 탔다.

그 뒤 바다를 건너가서 1004년(목종 7) 궁지현(宮池縣: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에 표착한 뒤 고려에 귀화했다. 고려 목종은 벼슬을 내리고 궁지현을 식읍으로 하사한 후 두릉군(杜陵君)에 봉하였다. 묘소는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석불산에 있다.

이름을 떨친 후손으로는 고려시대에 문하시중(門下侍中)·중서령(中書令)에 이른 두경승, 조선시대에 이르러 13세손으로 도총관을 지낸 두양필(杜良弼), 14세손으로 진무일등공신이었던 두기문(杜起文) 등이 있다.

두지건의 아들 두수총은 고려조에서 대호군에 올랐고, 손자인 두방은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르렀다. 두경령의 6세손 두경승(杜景升,?∼1197)은 고려 의종 때 공학군(控鶴軍)에 뽑혔다가 대정(隊正)이 되어 후덕전(厚德殿)의 견룡(牽龍)이 되었다.

정중부의 난 때 무인들이 남의 재물을 약탈했으나 홀로 전문(殿門)을 지키면서 남의 재산을 범하지 않았다. 이의방의 추천으로 내순검군지유(內巡檢軍指諭)가 되었으며, 뒤이어 낭장(郎將)이 되었다. 특히 고려 명종 때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여 용맹을 떨쳤다.

그 뒤 평장사로 삼한벽상공신에 올랐다. 그러나 최충헌의 폐왕 음모를 탄핵하다가 유배를 당한다. 자연도(紫燕島)로 귀양 갔다가 울분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당초 두경승(杜景升)은 만경에 세거하다가 1700년경부터 세(勢)에 밀려 금구(金溝)로 완전 이거했다. 그 뒤 후손들은 산소(山所)도 망배(望拜)만 해오다가 일제 강점기부터 묘소도 수호하고 시제도 지내고 있다.

현대 인물은 두호경(경희대교수), 두재균(전북대총장), 두장구(관동대교수), 두장기(상산식품대표), 두병기(태흥실업대표), 두정수(외무부), 두만균(원광대교수), 두상균(고교교장), 두원균(중학교교장), 두장열(고교교감), 두병윤(초등교장), 두장모(초등교장), 두병우(지구당위원장), 두기수(중앙기업대표), 두병통(병원장), 두장대(병원장), 두상달(칠성산업대표), 두민균(외무부), 두봉균(경정), 두완균(공군대령), 두영균(은행지점장), 두홍서(의사), 두승택(옥구향교전교), 두옥균(옥구향교전교), 두정효(약사, 선경약국), 두금단(약사,효자약국), 두극성(약사,소화약국), 두정도(약사, 세화약국)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23세 (基기), 24세 (鍾종), 25세 (洪홍), 26세 (秀수), 27세 (炳병), 28세 (均균), 29세 (鎭진), 30세 (洙수), 31세 (東동), 32세 (熙희), 33세 (在재), 34세 (陸육), 35세 (鉉현), 36세 (淳순), 37세 (杓표), 38세 (煥환), 39세 (赫혁), 40세 (錫석), 41세 (浩호), 42세 (相상), 43세 (燁엽), 44세 (圭규)이다. 항렬자는 이다. 세(世)와 대(代)는 다른 것으로 세(世)에서 1을 뺀 값이 대(代)가 된다. 예를 들면 58세손(世孫)의 경우 57대손(代孫)이다.

주요파는 옥구파(沃溝派), 금구파(金溝派), 김포파(金浦派), 진양파(晋陽派), 대구파(大邱派) 등이다. 집성촌은 전북 군산시 옥구읍 오곡리, 전북 군산시 회현면, 전북 임실군 운암면 지천리, 전북 임실군 삼계면, 전북 군산시 옥산면 당북리, 전북 익산시 왕궁면 등이다. 모두 전북 지역에 있다. 군산시 옥산면의 입향조는 15세기에 병마우후를 지낸 두승손(杜承孫,시조 두경령의 11세손)이다. 그는 만경에서 옥구로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회현면 금광리와 옥산면 당북리, 금성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두승손의 장자 두세준(杜世俊)은 효행으로 이름을 떨쳐 그 사실이 조정에까지 알려지자 중종 연간에 조정에서 정려를 세웠다. 두세준의 정려는 군산 지역의 정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두승손의 후손들은 15세기에 만경에서 옥구로 입거한 이후 회현면 금광리와 옥산면 당북리, 금성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해 왔다.

문무 관료 및 충신과 공신, 효자와 열녀를 여러 명 배출한 군산(조선 시대 옥구현)의 5대 성씨 중 하나다. 5대 성씨는 제주 고씨, 두릉 두씨, 남평 문씨, 담양 전씨, 진주 강씨이다. 옥구에 세거한 두릉 두씨 중에는 두승손의 후손들이 아닌 두장의 후손들도 있다. 그 수는 두승손의 후손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두장은 두승손의 숙부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두릉두씨는 1985년에는 총 1,163가구 4,838명, 2000년에는 총 1,741가구 5,70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578가구, 863명이 늘어났다. 2000년 현재 서울 1,300명, 부산 119명, 대구 115명, 인천 386명, 광주 49명, 대전 165명, 울산 46명, 경기 1,162명, 강원 57명, 충북 54명, 충남 90명, 전북 1,866명, 전남 89명, 경북 80명, 경남 116명, 제주 7명이다. 전북, 서울, 경기에 많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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