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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개혁개방 모델을 주목하라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9/09/01 [17:26]

 

북한이 중국처럼 개혁·개방을 할지 주목된다. 북한은 극한의 경제 상황에 처해 있다. 변할 수밖에 없다. 변해야 살 수 있다. 중국은 물론 소련 등 동구(東歐)국가들이 변했다. 최근에는 완고한 이슬람 국가들조차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가시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 가운데 스스로 변화하며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국가는 사실상 중국밖에 없다. 중국이 북한 변화의 모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978년 화궈펑을 비롯한 마오쩌둥의 잔당을 제치고 권력을 장악한 실용주의자 덩샤오핑(鄧小平)은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에 나섰다.
대안(代案)으로‘중외합자경영기업법(中外合資經營企業法)’을 만들었다. 1979년 말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경제특구(特區)가 신설됐다. 홍콩-마카오 권역인 선전(深?)과 주하이(珠海), 그리고 많은 화교들의 고향인 산터우(汕頭)와 샤먼(廈門) 등 4대 경제특구가 들어섰다.
그러나 중국이 개혁·개방을 외친다고 해서 외국자본이 그냥 들어올 수는 없었다. 투자가 부진하자 중국 정부는 같은 동포인 해외 화교들에게 손을 벌리게 된다. 결국 중국의 개혁·개방은 경제특구와 화교(華僑)자본에 의존해 성공할 수 있었다.
1988년‘대만 동포 투자 장려 규정’, 1990년‘홍콩·마카오 화교동포의 투자 촉진 규정’, 그리고 1994년‘대만 동포 투자보호법’등이 제정됐다. 그 뒤 중국의 개혁·개방 조치는 빠르게 번졌다. 초기인 1983년 약 6억4000만 달러이던 중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1991년 44억 달러, 1992년 110억 달러, 다음해에는 280억 달러, 그리고 1995년에는 약 380억 달러로 늘었다.
특히 화교 자본에 대한 우대 조치가 제도화한 후인 1992년부터 투자가 폭증했다. 1995년까지의 외국인 총 투자건수 22만8903건 중 82%가 화교 자본이었다. 화교 자본은 계약 금액 기준 약 67%의 점유율을 보였다.
화교 자본의 대부분은 홍콩과 마카오를 통해 들어왔다. 4대 특구가 주로 남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두 도시로부터의 투자비율이 건수로는 약 66%, 그리고 액수로는 약 56%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외개방의 시련은 피할 수 없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심리 및 제도적 혼란, 그리고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혼돈 이 심각했다. 결국 중국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맞게 된다. 1992년 덩샤오핑이 단행한‘남순강화(南巡講話)’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였다.
중국의 개혁·개방 의지는 확고하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정치적 결단과 화교 자본에 대한 합리적 운영이 국제적으로 평가되었다. 이는 대규모 서방자본이 중국으로 유입되는 요인이 됐다. 오늘날 중국경제의 기본 틀이 만들어진 셈이다.
공산주의 시절 중국경제는 거의 바닥 수준으로 추락했다. 극한의 상황이 이어지면서 반작용(反作用)의 동력(動力)이 잠재되어 있었다. 그대로 살든지 아니면 자본주의를 수용하든지 양자택일(兩者擇一)을 해야 했다. 결국 등소평 등 중국 지도자들은 개혁·개방 모험을 했다.
주자파(走資派)는‘자본주의 길을 가는 당권파’의 약칭이다. 마오쩌둥 시절에도 주자파(走資派)라고 불리는 인물들이 있었다. 물론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 수 있는 잠재적 동력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한편 북한의 상황은 중국 등소평의 개혁개방 노선 등과는 전혀 다르다. 북한도 1990년대‘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수백만의 아사자(餓死者)가 나왔다. 중국 마오쩌둥 시절과 흡사했다. 그러나 북한에는 개혁·개방의 주체(主體)가 없다. 김일성 유일사상 체제에서‘주자파(走資派)’는 전혀 없었다.
대규모 숙청으로 이념상의 반대파는 존재할 수 없었다. 북한도 경제특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았다. 실제로 지금 나진·선봉과 개성 특구 등이 있다. 그러나 특구를 운영하는 노하우를 중국으로부터 배울 의도는 전혀 없었다.
개성공단에서 기업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책이 지속되었다. 특구에서의 자유로운 사업 활동 때문에 생겨나는 체제적 충격은 용납할 수 없었다. 북한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것은 같은 동포인 한국뿐이다. 하지만 중국의 화교 자본에 대한 대우와 북한 당국의 한국 투자에 대한 대우는 하늘과 땅 차이다. 한국 투자를 보호하고 장려하는 특별법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북한 당국이 마지막으로 우려하는 것은 극빈(極貧)의 주민들에 의한 민중봉기다. 하지만 북한은 병영(兵營) 국가다. 국가가 곧 군대요, 국력은 곧 군사력이다. 전체 인민들은 반(半) 무장 상태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북한 국내총생산의 40% 정도가 국방비에 투입된다.
주민에 대한 확실한 통제가 가능하다. 막강한 무력(武力)으로 체제 이탈자들을 언제든지 처벌한다. 철저한 감시가 가능하다. 탁아소 시절부터 철저히 행해지는 세뇌(洗腦)교육도 심각하다. 이는 반(反)정부 사고를 효과적으로 막아준다. 다른 구 공산국가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체제다.
자본주의의 핵심 요소는 시장과 소유권(所有權)의 확장이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으로 권력의 약화(弱化)를 의미한다. 자본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시장의 확장과 소유권의 확대가 불가피하다. 현(現) 집권층의 권력 양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개혁·개방을 성공적으로 이끈 중국조차도 이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중국의 경제는 발전했다. 그러나 정치제도는 여전히 공산주의 일당(一黨) 독재를 유지하고 있다.
체제를 변화시키려면 그에 따른 주체가 있어야 한다. 북한이 채택할 수 있는 방법은 남한처럼 성장 개발 방식뿐이다. 역시 자본이 필요하다. 결국 투자 유도 밖에 없다. 그러나 시장성이 없으면 투자에 실패한다. 중국은 엄청난 매력을 지닌 시장이다. 반면 북한은 중국처럼 내수적으로 매력이 있는 시장이 아니다.

(정복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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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01 [17:26]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