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의 어제와 오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한반도 분단의 비극
 
새만금일보 기사입력  2019/09/09 [07:31]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은 바로 분단이다. 한반도 분단의 비극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뿌리 깊은 한반도 분할 논의를 역사적으로 규명해야 한다. 구한말(19세기 말~20세기 초) 열강의 한반도 분할 논의, 그리고 38선 획정의 진실은 매우 중요하다. 당초 한반도 분할을 시도했던 장본인은 미국이다. 이 분할 안은 2개가 아니라 4개였다.

 

특히 중요한 것은 미국은 서울을 베를린식으로 분할함으로써 냉전 시대를 예고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분단에 대해 맨 먼저 착안한 것은 미국의 전쟁성 작전국이었다. 이곳에서는 전쟁이 끝나기 약 한 달 전인 19457월에 이미 한반도의 분할을 구상했다.

 

소련은 원산을 제외한 함경남북도를, 영국은 평안남북도와 황해도를, 미국은 원산을 포함한 함경남도 일부와 강원도 경기도 충청북도 경상남북도를, 중국은 충청남도와 전라남북도 그리고 제주도를 점령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후에 미국의 전쟁성 작전국은 한반도의 분할에 영국과 중국을 참여시키지 않고 소련과 미국의 양대 분할을 실시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그리고 38도선을 확정한 것은 3성 조정위원회였다. 3성 조정위원회라 함은 전시 중 미국이 전쟁 수행에 관한 의견과 정보를 신속히 교환하고 전쟁 수행 방향을 최종적으로 결정해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국무부, 전쟁성, 그리고 해군성의 요원들이 구성한 연석회의였다.

 

이 협의체는 전시 중에 필요했던 모임이었기 때문에 군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당시 3성 조정위원회의 전쟁성 측 대표단에는 링컨 소장, 본스틸 대령, 그리고 러스크 중령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로즈 스칼라’(옥스퍼드대학 특대생)들이었다.

 

1945811일 수석대표인 링컨 소장은 위원회 의장인 던으로부터 소련군이 한반도에서 남진한다는 사실과 이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링컨소장은 본스틸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과 인천이 포함되는 선에서 남북을 분할해 일본군의 항복을 받을 수 있는 군사상의 분계선을 그으라고 지시했다.

 

본스틸 대령은 서가를 뒤졌으나 마땅한 조선의 지도를 찾을 수 없었다. 고민하던 중 내셔널 지오그래픽사에서 만든 벽걸이 지도를 발견한다. 30분 동안 궁리한 끝에 푸른 잉크로 서울과 인천이 포함되는 38도선을 그어 링컨 소장에게 보고했다. 이 분할 안은 합참과 3성 조정위원회를 거쳐 국무장관, 전쟁성장관, 해군장관에게 보고된 후 최종적으로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그리고 이것이 최종적일반 명령 제1로 확정되어 맥아더 사령관에게 전달됐다. 그런데 러스크 중령이 그날 밤 벽걸이 지도를 보고 서울과 인천이 포함되는 선을 고민하던 중에 38도가 눈에 띄어 그 선을 분단선으로 삼았다고 증언한 것은 위증이다. 문제의 지도는 너무 작아 위도(緯度)1도 단위로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10도 단위로 그려져 있어서 38도선이 나타나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반도를 분할하면서 왜 하필이면 38도선이었을까. 19457월의 포츠담회담에서 실무 회담으로 미국과 소련의 참모총장인 마셜 장군과 안토노프 장군의 회담이 있었다. 이 회담에서 동해안의 잠수함 작전 관할 지역을 조정했다.

 

한반도 동해안의 북위 38도에서 시작해 동해안의 북위 40- 동경 135도를 거쳐 북위 4045- 동경 140도를 잇는 것으로 작전 경계선을 결정했다. 38도선은 이 작전 분계선을 한반도 쪽으로 좌향(左向)해 연장한 것이다. 자를 대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은 것이 아니라 오른쪽의 동해분계선을 왼쪽으로 연장한 것이다.

 

이 분단선이 확정된 다음 미국은 소련이 이를 선선히 응낙한 데 대해 놀랐고, 소련은 위도가 그토록 남쪽으로 내려간 데 대해 놀랐다. 그 후 링컨소장은 40도선을 제시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여러 가지 분할 안 중에서 3성 조정위원회의 현역 영관 장교들이 주장한 38도선은 그 중 최남단 분할선이었다.

 

이것이 최종안으로 확정되었다는 사실은 38도선이 군부(국방부)와 민간인(국무부)의 타협 선이 아니라 군부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분할선이 이토록 남쪽으로 내려옴으로써 한반도 분할의 비극은 더욱 커졌다.

 

한편 소련의 스탈린은 한반도의 비극을 본격적으로 설계한 인물이다. 스탈린은 2차 대전 승자다. 그는 히틀러를 궤멸시켰다. 그리고 그가 참여했던 얄타회담은 한반도 분단의 뿌리다. 스탈린의 야심은 동북아에서 영향력 확장이었다. 루스벨트는 그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

 

조선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도 스탈린의 작품이다. 스탈린은 냉전시대 공산세계 대부였다. 194912월 스탈린 70회 생일 기념행사가 모스크바에서 있었다. 중국 주석 마오쩌둥(毛澤東)도 참석했다. 당시 마오는 중·소 우호조약 체결에 매달렸다.

 

한국전쟁에도 스탈린의 기획과 음모가 들어있다. 스탈린은 김일성의 6·25 남침 계획을 수락했다. 마오는 중국 군대를 한반도에 진입시켰다. 당시 스탈린은 미국과 중국의 싸움을 부추겼다. 그 사이 스탈린은 동유럽의 지배권을 강화한다. 그가 숨진 4개월여 뒤 한국전쟁은 종료됐다.

 

스탈린의 그림자는 한반도에 질기게 남아 있다. 북한체제의 강압과 공포는 스탈린 방식이다. 대회장에 끝없는 박수 소리는 모두 스탈린의 잔재다. 한국의 남남갈등 속 극렬좌파 행태에도 그 잔영이 있다. 계층 가르기, 증오심 키우기, 거짓 선동, 진실 왜곡은 볼셰비키 투쟁 전략이다.

 

우리나라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중간에 있어 지정학적으로 두 세력의 완충지대에 놓여있다. 대륙세력은 중국과 러시아(구 소련)이고, 해양세력은 미국과 일본이다. 시대마다 이 두 세력의 대립이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모두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강력한 충돌로 빚어낸 비극이다. 반도(半島)라는 말에는 일본이 우리의 대륙성을 격하시키려고 의도적으로 규정했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정복규 기자)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9/09/09 [07:31]  최종편집: ⓒ 새만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