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邊山) 사랑방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3/01/18 [08:45]

변산(邊山) 사랑방

새만금일보 | 입력 : 2013/01/18 [08:45]


나의 선조는 우암(尤庵 송시열1607-1689)이 사약을 받은 유서 깊은 정읍 태인에서 김제 금구를 거쳐 산수 좋은 부안 땅 지금의 집터에 둥지를 튼 지 장장 6대를 이어 텃새처럼 살고 있다. 구약성경에 아브라함은 본토 아비 집을 떠나 머나먼 낯선 땅에서 눈물겨운 개척을 하여 부자가 되고 자손들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번성하고 성공했다는데... 나는 고향지킴이로 텃밭을 가꾸며 이름 없는 백면서생(白面書生)처럼 유유자적(悠悠自適) 노후를 보내고 있다.

증조부께서는 한약방을 하셨는데 약을 조제하여 아픈 사람을 잘 보살펴 근동에서는 명의로 소문나 환자들이 몰려와 20여명의 대소가 식구를 먹여 살렸다고 한다.
동학을 믿으신 증조부님은 큰 손자인 아버지께서 할아버지는 손자들의 교육에는 힘은 안 쓰고 동학교도들이 오면 30원, 50원의 큰돈(소 한 마리 값 80-100원)을 왜 주느냐고 불평을 하셨는데, ‘등에 뿔나야 산다.’ 곧 천지개벽이 일어나니 잠잠하라고 타 일렀다는 것이다.
아버님은 1905년 을사늑약 때 태어나 일제의 압박과 8.15해방과 6.25의 동족상잔의 수난과 격동기를 거치면서 배고픈 시절을 용케도 잘 넘겨 우리 6남매를 지켜오셨다. 
아버지는 네 발통 소 구루마를 끌기도 했고 논밭을 열심히 갈아 일 한 덕분에 논 두 섬지기(8천평)를 마련, 중농으로 흉년을 만나도 우리 식구는 꽁보리밥이라도 굶기는 일은 없었다.

딸만 다섯에 나를 늦게 낳아 대를 잇게 되었다고 여간 기뻐하셨다.
나는 약관에 큰 꿈을 안고 정치에 몰두했는데 결국 정치도 접고 주경야독하며 작은 사업과 농사일에 열심을 내었으나 졸부가 되는 부자의 꿈도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열심히 산 덕에 아내가 소원하던 서민 아파트 한 채를 노후 대책으로 선물하였다.

전답을 정리하여 전주로 합산할까 했으나 땀 흘려 일궈 놓은 문전옥답과 재질 좋은 변산 소나무로 어렵게 마련한 아버지의 혼이 담긴 4칸 한옥을 떠날 수가 없어 말년에 텃밭을 가꾸며 글줄이나 읽을 요량으로 아래채 서재를 넓혀 ‘변산 사랑방’이란 문패를 걸어놓고 여생을 보내기로 작심하였다.

‘변산 사랑방’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는 내변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우리 집은 큰 장마가 진다거나 한겨울 눈보라가 치는 날이면, 근동에서 유일한 사랑방이 우리 집 뿐이었는데 쉬어가는 사랑손님에게 아버지는 당신의 밥 절반을 덜고, 우리들도 한 수저씩 덜라며 십시일반(十匙一飯)하여 배고픈 사랑손님 접대하기를 좋아 하신 아버지의 나눔 정신을 기리는 뜻에서다. 금년만 해도 동네에서 호형호제 하던 세분이 다시 못 올 먼 나라로 떠났다.

마을회관 경로당에는 7-8순을 넘긴 홀로된 허리 굽은 파파 할머니들만 그득하게 모여 놀고 있다. 외출 길이면 잠시 들려 동네 소식을 듣기도 하는데, 나 같은 60대는 마을에서 청년층에 든다. 마을총회가 열렸다. 선배 이장과 동민들이 마을을 위해 봉사 한번 해보라고 전폭적인 지지로 이장으로 추대를 받았다.

선대로부터 6대를 이어 한 평생 살면서 우리 동네를 위해 별로 일한적도 없고 하여 더 늙기 전에 봉사할 기회를 얻었으니 동민의 애환과 더불어 농주 잔을 기울이다보면 좋은 글감도 나올 것 같아 이장 직을 덜렁 수락하고 말았다. 선임 이장 왈 ‘이 사람아 이장을 하려고 4명이나 들먹거렸다네. 이장도 명당 쓴 자손이라야 혀, 아무나 되는 것 아니 랑께! 허허허’ 한바탕 웃었다.

아무튼 나를 지지해 준 동민들에게 감사할 일이다. 한 주간동안 전주 집에 가있는 아내는 내가 이장이 된 것을 알면 펄쩍 뛸 것이다. 완벽주의로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깔끔한 성격에 허풍산이 같은 나와는 정반대다. 옛 선비들은 벼슬길을 떠나면 귀향하여 후학(後學)과 고향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좀 배웠다거나 돈푼이나 모우면 고향을 버리고 젊은이조차 도시로 떠나버려 아기울음소리 없는 농촌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정겨운 고향마을은 섣달 그믐날 동구 밖에서 막내아들을 기다리는 따뜻한 어머니 품안 같다. 기름진 텃밭에 땀 흘려 심고 가꿔 태양에 말린 빨간 고추와 들큼한 유기농 배추를 수확하여 아들 딸 네 김장도 함께 담아 나눠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의 ‘변산 사랑방’은 사람냄새가 배인, 여름이면 시원한 펜션이요, 겨울이면 따뜻한 산장으로, 오늘같이 변산 우슬재(牛膝峴)에서 삭풍 따라 흰 눈이 펄펄 날리는 날이면 길 잃은 길손을 맞아 따끈따끈한 고구마에 잘 익은 배추김치가닥을 걸쳐먹는 별미를 함께 나누고 싶다.
 
/송기옥 <수필가, 한국문협 부안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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