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마(愛馬)다비식(茶毘式)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3/06/24 [10:25]

애마(愛馬)다비식(茶毘式)

새만금일보 | 입력 : 2013/06/24 [10:25]

 
봄 불은 *여시불이라는 말처럼 건조한 봄날에는 각별히 불조심을 하라는 경고도 잊은 채 논둑이나 밭둑에 잡초를 태우다가 뜻하지 않는 화마(火魔)를 끌어들여 큰 피해를 입는 것을 종종 보았다. 지난 식목일 날에 마파람이 온종일 불며 저녁에는 큰비가 온다기에 집 앞 텃논에 너덜너덜한 짚더미를 파헤쳐 불태우고 잔불이 다 꺼진 것을 확인 후 작업을 마쳤다.
정오 무렵 마루문을 열고나오니 ‘후두둑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차고 쪽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깜짝 놀라 맨발로 뛰어 가보니 강한 마파람에 불길이 이미 번져 널름널름 화마의 붉은 혀는 10여 평의 차고 겸 농자재 창고를 삼켜 가고 있었다.
그 안에는 14년간 내발이 되어준 애지중지(愛之重之)아끼던 애마가 매캐한 연기 속에 휩싸여 나 좀 구해달라고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애마를 구하려고 접근했으나 연기에 질식 할 것 같아 순간적으로 포기를 하고 말았다.
플라스틱 모판상자 900장과 수명이 다 된 승용이앙기와 농업 박물관에 보낼 호롱기며 갖가지 농자재에 불이 붙어 하늘로 치솟은 검은 연기가 온 동네를 뒤덮었다.
‘119?119?’ 떨리는 손으로 119버튼을 눌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화마는 대문 칸 전선을 타고서 사랑방 서재로 옮겨 붙기 시작하였다. 불구경꾼들이 몰려들었으나 누구하나 접근도 못하고 물 한 동이 퍼다 주는 이 없었다.
사랑방 서재에 뛰어들어 컴퓨터와 귀중한 서류를 챙겨 정원 동백나무 밑으로 옮겼다.
‘오! 하느님 ? 내 평생 모아 놓은 자료집이며 서책이 불타면 안 됩니다. 그리고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사랑채와 안채가 무사하도록 속히 소방차를 보내 주소서...’이때처럼 길고긴 시간을 기다린 적이 없다.
‘119? 119? 빨리 좀 오세요...’ 20여분 쯤 지났을까 소방차가 와 물을 뿌려 그 무서운 화마를 진압하고 잔불이 붙은 사랑채의 서재 지붕을 뜯고서 물을 뿌려 댔다.
천장에서 흘러내리는 흙탕물과 검은 숯검정 물로 서재는 흥건하게 고여 일시에 이재민이 되어 양동이 여러 개에 물을 받아 자정이 넘어 밤이 깊도록 내다 버렸다.
한 주간 동안 화마가 삼킨 잔재를 힘겹게 치우고 또 치웠다. 지인들의 위로 전화가 왔다.
그 정도로 불길을 잡았으니 천만 다행이라며, 불같이 일어나라는 위로를 받았다.
안채 뒤란에 동백나무를 심어 이웃집과의 불길 차단막을 쳐놓아 평소에 불조심을 했건만...
국보1호 숭례문 화재사건이나 강릉 낙산사가 산불로 인해 전소된 것을 떠오르게 한다.
고창선운사 뒷산에 가면 동백 숲이 우거져 봄이면 붉은 동백꽃도 장관이지만 산불로 인한 가람과의 차단을 한 지혜로움을 볼 수가 있다.
나의 실수 아닌 실수로 하마터면 큰 화마를 불러들여 6대를 지켜온 안채 한옥까지 불태울 뻔 했다. 눈이오나 비가와도 나의 발 노릇을 한 애마를 애석히도 다비식을 하여 떠나보내고 보니 두발이 묶였다. 대중교통 버스를 한 두 시간쯤은 보통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2~3년은 더 탈 애마를 불시에 보낸 애도의 기간으로 연말이나 차를 구입하겠노라고 아내에게 선언하였다. 그렇게 일 개월을 지냈다. 지인으로부터 괜찮은 중고차가 나왔으니 나오라기에 마지못해 가보니 나 같은 서민이 타기에는 고급 차였다.
말이 중고차지 10년은 거뜬히 탈 수 있는 새 차와 진배없었다. 아내가 차안에 앉아 보더니만 좋아하는 눈치여서 즉석에서 계약을 하고서 다음날 잔금을 치루고 집으로 끌고 왔다.
그동안 잘도 부려먹었던 나의 애마, 조랑말 대신 준마를 타고 보니 신분이 상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내와의 약속 선언도, 가버린 애마와의 보이지 않는 애도의 자숙기간도 겨우 1개 월 만에 파기 한 채 새 준마를 타고서 거리를 신나게 달리는 변덕스런 내 마음 나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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