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선열의 날, 故임휘영님의 애국정신을 기리며

채규곡 기자 | 기사입력 2015/11/17 [00:07]

순국선열의 날, 故임휘영님의 애국정신을 기리며

채규곡 기자 | 입력 : 2015/11/17 [00:07]

 
11월 17일은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서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 ·희생하신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순국선열의 날'이다.
이날은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을사늑약(1905.11.17)을 잊지 않기 위해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정하고 추모행사를 거행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 온 몸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우리는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과 국토가 일제에 의해 유린됐을 시기에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며 살아생전에 내 놓기를 꺼려했던 김제 성덕출신의 故 임휘영 어르신에 대한 이야기를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재조명하고자 한다.
 
# 식민지교육 반대, 90년 만에 받은 감격의 명예졸업장
  전고·북중 동문회는 지난 8월 29일 개교 제96주년 총동창회 정기총회 및 모교 방문의 날 행사를 갖고 이 자리에서 일제강점기인 1926년 일본인 교장 추방 사건 주도자로 제적된 김제시 성덕면 출신, 故임휘영 동문(북중 5회) 가족에게 입학 90여년만에 감격의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

이날 고인의 3남인 임승기(전 성균관대학교 교수)씨를 비롯한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인의 5남인 임정기(전 서울대 부총장)씨가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명예졸업장 추증은 1남인 임성기(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씨의 친구들이 알고 있는 사실들을 밝혀내면서 신청하게 됐으며 동창회사무처에서는 '전고·북중 80년사'에 수록된 내용과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학적부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명예졸업식을 마련하게 됐다.
 
# 일본인 교장 배척운동, 퇴학처분 6개월의 징역에 집행유예 1년 선고

故임휘영(1908~1972)은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 641번지(후리마을)에서) 출생해 만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전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26년 6월 3학년 재학 중 한일학생 차별대우 철폐 및 일본인교사 배척 등 식민지 교육을 반대하며 동맹휴학에 돌입한 후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자 같은 해 7월 일본인 교장을 교문 밖으로 추방한 혐의로 퇴학 처분을 받고 전주지방법원에서 6개월 징역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 경신양조장 경영으로 독립운동 계속
이후 서울로 올라가 활동하다가 1928년에는 1만2,000원 자본으로 서울 관철동에서 경신양조장을 경영하며 독립운동기금 마련에 착수했고 이듬해에는 독립운동조직 김세동(1870~1942, 1993년 건국훈장애국장 추서)과 접속, 수차례의 현금을 전달했다.
그 중에서 8,000원을(당시 논10필지 값, 현 7억원 정도) 전달한 정황이 조사과정에서 노출됐으나 개인적인 부채라고 속여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1929년에는 독립운동 비밀조직인 만경청년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 종로경찰서에 구속되기도 했다.
 
# 후리 식산계 설립, 항일운동가 지속 지원
1934년 임휘영은 고향인 김제 성덕면 후리마을로 내려와 지내면서 1941년에 '후리 식산계'를 설립해 묘라리 일원을 구역으로 공동시설, 생산지도, 판매 및 구입 등을 표면에 내걸고 활동했으나 이는 위장에 불과했고 내면에서는 독립운동가들과 긴밀한 접촉을 통해 항일운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다.
그 시절 접속인사들은 후리마을 박판철, 박판동, 임부득과 나시마을 최봉호, 만경읍 곽대형(항일비밀조직만경청년회 집행위원 승계자) 등 이외에도 5명 정도가 더 있었다.
 
# 숨겨진 독립운동가를 찾아 발굴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
故임휘영씨는 살아생전 가족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선행이나 애국적인 행동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그저 일제치하 그 시절엔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다 가셨다.
 
특히 누이동생인 임부득(1911) 또한 전주여고보생들의 사회주의적 비밀 결사 적광회를 조직(1929. 5월)해 활동했고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929. 3월과 1934. 12월, 각각 1년씩 2년간 징역을 치렀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를 겪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유명한 독립운동가의 이름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주위에 故임휘영씨 처럼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기약 없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숨겨진 독립운동가도 알아야 한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기까지 대한민국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겪었을까? 
2015년, 광복 70주년의 한 해를 보내는 지금, 우리는 그 아픔을 이해하고 잊지 않기 위한 얼마의 노력을 하고 있는가?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알려지지 않은 독립 운동가들이 많다.
우리는 후손으로서 이러한 분들을 발굴해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분들의 피와 땀의 결과라는 역사적 사실을 새기고 우리 민족이 가장 크고 아픈 상처를 입었던 일제강점기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채규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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