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김선달의 졸개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3/02/28 [07:26]

봉이 김선달의 졸개

새만금일보 | 입력 : 2023/02/28 [07:26]

 

 

어느 시골 교회 목사가 자기 위상과, 교회당 이름을 알리기 위한 전시효과에 열을 올렸다. 대통령을 배출한 서울의 S교회 K목사라는 분을 강사비조로 수 백 만원을 들여 어렵게 모셨다. ‘100년 만에 한번 날까 말까 한 귀한 강사목사님’이라고 소문을 내어 전교인이 참석하기를 독려 했으나 막상 그가 강사로 초빙 되었을 때 예배당 안이 텅텅 비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그 후속타로 ‘행복 전도사’라는 별명이 붙은 KBS 봉숭아 학당의 인기 개그맨 최 아무개를 강사로 초청한다며 몇 달 전부터 플래카드를 내걸고, 선물을 곁들인 쇠머리국밥 점심까지 준비하여 대대적인 홍보를 하였다. 어린이와 중,고등 학생과 어른 할 것 없이 총동원하여 교회 안을 그들먹하게 채웠다. 그런데 오전 11시에 온다던 그 유명 개그맨은 12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감감소식이다. 그 공백시간을 메우기 위해 박수를 치고 기타 반주에 맞춰 복음성가를 목이 아프게 부르며 야단법석 진땀을 뺐다.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그 개그맨이 헐레벌떡 나타났다. 많은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는데, 강단에 오른 그는 첫마디가 ‘주일이라서 차가 막혀 늦었다’는 변명만을 한참 늘어놓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전혀 준비가 없는 맹탕에 불과하여 관중들의 실망이 너무나 컸다. 앞좌석에 앉은 어린학생들과의 표정관리에 대한 대화 몇 마디가 전부였다. 그 흔한 노래 한 곡조를 뽑는다거나 자기 장기자랑 하나 없이, 불과 10여분 만에 강단을 내려와 개런티로 300만 원을 주머니에 홀라당 집어넣고서 무엇에 쫓기듯 도망자처럼 황급히 사라졌다. 허망하기 그지없고 낮도깨비한테 홀린 기분이다. “어째 저런 사람을 강사로 초청했느냐?”는 항의 어린 눈으로 신도들은 물론 외래 손님들의 실망과 불만의 표정이 역력 하였다. 시골교회 그 목사는 이번에도 실패한 집회에 변명하기에 급급하였다. 그 돈이면 국내 유명한 인문학자나 유명교수 여럿을 초대하여 인문학 강의를 하는 게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 개그맨은 이제 나이 25세라니 무슨 세상 물정을 알 것이며 인생경험이 있어야 신앙 간증도 하여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것 아닌가. 진행 측의 미흡한 선택과 대 망신만 안겨준 봉숭아 학당이 아닌 악당(惡黨)에게 귀중한 시간과 신도들의 피 같은 헌금만 떼인 셈이다. 아마도 새벽기도마다 강사를 위한 그 목사의 기도발이 부족했나보다. 남을 웃기는 일도 힘들지만, 자기를 기만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더욱 가증스러운 개그 공해다. 개그란? 농담과 장난 등으로 재치 있게 관객들을 웃기는 직업이다. 자기직업에 프로가 되려면 날밤을 새더라도 준비를 철저히 하여 관중에게 웃음을 줘야 한다. 그리고 약속을 했다면 어떠한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그 시간을 지켜야 하며, 관객에게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한 시대를 풍자(諷刺)와 향수를 불러일으킨 바보노릇을 잘한 배삼룡 쇼가 대중에게 인기가 높았던 것은 어떤 이유일까. 또한 영국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1889-1977)’은 미국으로 건너가 1999년 미국영화연구소가 뽑은 50대 유명배우 중 10위로 선정된 세계적인 희극과 웃음을 선사한 개그맨이다. 그는 어릴 때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와 유랑극단의 3류 가수 어머니를 따라 아역부터 시작한 파란만장한 역경을 겪으며 관객에게 겸손한 자세로 피와 땀과 눈물로 다가간 희극배우로 감동을 자아내개 했다. 어느 문인들의 모임에 갔는데 단 3분간의 시 낭송을 위해 자기 명예를 걸고 몇날 며칠을 두고서 맹연습과 값비싼 드레스 의상을 준비하고 얼굴표정 등에 혼신을 다하는 K시인의 진지함이 새삼 돋보여 관중들의 아낌없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경제가 어렵고 미래가 불확실한 이 시대에 웃음으로 희망과 용기를 주는 그런 개그맨을 대중들은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날에 최 아무개 개그맨은 *피양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던 봉이 김선달의 졸개만도 못한 사기꾼에 불과했다면 과격한 표현일까. 잔털도 덜 벗겨진 설익은 봉숭아 악당의 개그라는 부도덕한 코미디안의 못된 행위에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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