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군의 집강소와 김홍집내각 (3)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3/03/31 [07:20]

동학군의 집강소와 김홍집내각 (3)

새만금일보 | 입력 : 2023/03/31 [07:20]

 

 

녹두장군 전봉준과 초토사 홍계훈은 전주화약 이후 동학혁명군은 청군과 일본군이 조선에서 물러나 주기를 바랐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민비와 조선정국도 청군이 일본군에게 패하리라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안했다. 일본군은 갑오년 6월22일 이른 아침에 대규모 병력을 앞세워 조선왕궁을 불의에 점령하여 고종은 연금 상태로, 대원군을 3번째 집정하게 하여 민씨 척족인 민영익,민영준,심상훈 등 민비 친족체제를 내 쫓고 김홍집(金弘集)을 수반으로 하는 박정양, 김윤식, 조의연 등 이름 하여 갑오개혁 친일정권이 수립된다. 일본은 이들 친일 정권에게 청국과의 모든 수교와 조약을 폐기함은 물론 모든 권한을 일본에게 위임케 하고 그해 12월에 대원군도 추방당한다. 일본군은 6월25일에는 아산만 풍도 부근에 떠있는 중국함대 고승호를 격침시켜 청군 1000여명을 수장시켰으며, 일본군은 6월27일에는 성환에서 이리떼처럼 청군을 공격하여 괴멸시킨다. 이와 같이 엄청난 동학민란과 내외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니 조정은 김홍집(金弘集)을 국무령으로 삼고 일본에 망명가 있던 박영효를 불러들여 새로운 집정제를 편성하여 일본의 힘에 의한 이름 하여 갑오경장(甲午更張)이라는 단발령 등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오랫동안 조선사회의 폐단인 종의 제도폐지 등 여러 가지 잘못된 관습에 대해서도 1894년 7월 30일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즉, 문벌과 반상제도(班常制度)의 혁파, 문무존비(文武尊卑)의 차별 폐지, 공사노비법(公私奴婢法)의 혁파, 역인(驛人)·창우(倡優)·피공(皮工) 등 천인의 면천, 죄인연좌법(罪人緣坐法)의 폐지, 양자제도의 개선, 조혼 금지 및 과부 재가 허용 등이 갑오경장의 주 개혁이었다. 위와 같은 개혁은 동학군이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사실상 고종 친위정권은 이미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 나라는 풍전등화 격이 되고 말았다. 한편으로 동학군 전라좌도 김개남(金開南) 장군은 굳게 닫힌 남원부에 3천 병력을 몰고 가 일시에 쳐 집강소를 세우고 남원부사 이용헌(李容憲)을 사로잡아 치죄(治罪)하였다. 그러나 남원부사가 김개남장군의 뜻에 불응하자 목을 베어 관문(官門)에 매달고 방문(榜文)을 지어 공포를 하였다. 지리산 운봉현 역시 3천의 병력과 함께 17세의 김봉득(金鳳得)이라는 소년장수가 지략이 뛰어나고 신기의 검술로 운봉현을 향해 갔는데, 이 소식을 들은 운봉의 대소 관리들은 겁을 먹고 항복을 하였다. 운봉은 험준한 태산준령(泰山峻嶺)으로 돌이 많은 험로를 김봉득(金鳳得) 소년장수는 평지를 가듯 달려갔다. 운봉관청의 관곡을 헐어 기민을 하여 동학군의 기세는 날로 드세어 갔다. 또한 남도에서 가장 큰 나주성은 뒤에는 준험한 산이 산성처럼 둘러있고 앞에는 영산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자연 해자로 4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면 천연요새지가 되어 나주목사는 최경선(崔景善)동학군과 여러 날 서로가 대처 할 뿐 시간만 흘렀다. 전봉준은 최경선 군을 퇴각하게 하고 휘하 몇 사람과 같이 동점문을 통해 나주성에 들어가 관사 앞에 나타나니 나주목사는 크게 당황하였다. ‘나는 동학군 대장 전봉준이다. 주관(主官)은 괴이하게 생각 말라. 군도 조선 사람이요, 나도 또한 조선 사람이다. 그릇된 국정과 외세로 인하여 나라가 존망에 처했는데, 어서 빨리 꿈에서 깨어나라’고 호통을 치니 나주목사는 전봉준의 기풍과 담력에 눌려 말 한마디 못하매, 전주화약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나주목사의 순응으로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서 나주성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옥에 갇힌 수 백명의 동학군을 석방하게 되었다. 전주화약 이후 전라도에 53 개소의 집강소가 설치되어 억압과 설움을 받던 농민들은 동학교의 후천 개벽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동학 교세가 확장되어 삼남을 뛰어넘어 강원도 일대에 포접제(抱接制)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조정대신과 민비는 청군을 불렀으나 허사가 되니 미국공사와 러시아 공사의 힘을 빌리려고 하였다. 일본은 이러한 민비 시해를 위한 모략으로 일명 ‘여우사냥’이란 야만적인 을미사변을 일으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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