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조약과 신미양요(하)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3/06/09 [06:31]

강화도 조약과 신미양요(하)

새만금일보 | 입력 : 2023/06/09 [06:31]

 

 

1871년 신미년 10월 11일 프랑스는 제2차 보복원정으로 군함 7척에 병력 1000대포 10문과 리델신부와 함께 강화도를 재침 하였다. 10월 16일에 강화부를 점령<우리는 자비로운 황제의 명령을 받들고우리 동포형제를 학살한 자를 처벌하러 조선에 왔노라>는 포고문을 내걸었다조정은 순무영(巡撫營)을 설치하여 대장에 이경하(景夏), 중군에 이용희(容熙), 천총(千總)에 양헌수(憲洙)를 임명하여 출정하게 하였다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10월 26일 문수산성(文殊山城)에서 쌍방 간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이때 양헌수는 어융방략(禦戎方)으로 강화도를 수복할 작전계획을 세워 군대를 이끌고 덕포에서 비밀리에 심야 잠도작전(潛渡作戰)을 전개강화해협을 건너서정족산성(鼎足山城)을 점거하였다조선군이 강화해협을 건너가 정족산성에 농성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로즈는 올리비에대령에게 정족산성 공격을 명하였다. 11월 9일 일대 격전이 벌어졌으나접전의 결과 프랑스군은 전사자 6명을 포함하여 6070명의 부상자를 냈으며조선군은 전사자 1부상자 4명이었다정족산성승첩(鼎足山城勝捷)은 화력면에서 열세인 조선군 양헌수의 뛰어난 전략에 의하여 프랑스군을 격퇴하여 강화도에서 철수하게 하였다이 싸움은 한국 역사상 최초로 서구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격퇴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프랑스군은 강화도에서 철수할 때옛 서적 345권과 은괴 19상자 등 문화재를 약탈해갔다로즈의 원정은 제2차원정이 끝날 때까지 무려 두 달에 걸친 장기 원정이었다첫째 외교적 입장에서 보면수교관계가 없는 조선개항 입약협상(立約協商)조차 벌이지 못한 채 돌아왔으며둘째 군사작전에서 정족산성에서의 패전한 것과 셋째 종교적으로 선교사 학살에 대한 응징보복인데 보복은커녕 오히려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박해와 쇄국정책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871년 신미년 4월 미국의 로저스는 군함 5척과 군사 1200여 명을 이끌고 남양(南陽앞바다 물치도(勿淄島)에 정박했다가 강화부의 관문인 손돌목(孫乭-손돌항)에 기항한다이때 조선에서는 외국함대가 무단 침범하므로 함대에 포격을 가하니미국함대도 응수하여 조선과 미국 간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다손돌목사건 직후 미국대표는 포격에 대한 사죄와 손해배상을 요구하였으나 조선은 미국의 주권침해와 영토침략행위로 간주하고 협상을 거부하였다협상이 결렬되자 미국함대는 초지진(草芝鎭)에 상륙하여 수륙양면으로 공격하였고초지진·덕진(德鎭)·광성진(廣城鎭)을 점령하였다광성진싸움은 치열하여 아군 전사자 350부상자 20명이었고미국측은 전사자 3부상자 10여 명이었다다음날 첨사 이염()이 초지진을 야습하여 적의 선박을 물리쳤다미국은 싸움에서는 이겼으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쇄국양이정책 강화로 조선개항을 단념하고 함대를 철수하고 만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거친 후 1875년 초지진에 일본은 영국에서 구입한 운용호를 몰고와 미국의 페리제독이 일본에게 개항을 강요하듯 조선군은 화력이 훨씬 우수한 일본의 운용호에 압도당하여 굴복하고 만다다음해인 1876년에는 일본과의 불평등 강화조약을 맺음과 동시에 영국,미국,프랑스,러시아 등 서구열강들은 치외법권 같은 불평등 조약을 앞세워 조약을 맺게 된다세계정세에 어둡던 일본은 미국의 페리제독이 흑함을 끌고와 강제조약을 1854년 맺게 된 후 20년 만에 운요호를 앞세워 똑같이 조선을 강압적으로 강화도 불평등조약을 맺게 된다강화도 조약은 훗날 일본제국주의가 한반도에 첫발을 들여 놓게 되는 신호탄이었다강화도 해안은 요새지로 군대가 주둔할만한 곶대가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진()이 김포에서 30분이면 배로 노를 저어 곧바로 들어 올수 있는 초지진과 덕진진신미년에 미군한테 조선군이 희생당한 광성보의 용두돈대 신미순의총이 있고 오두,화도,용당,좌강돈대에 이어 강화 전쟁박물관이 있는 갑곶돈대에는 홍이포(紅夷包)가 전시되어 있다서북쪽 해안을 따라 가자면 제비꼬리로 알려진 월곶돈대 연미정(燕尾亭)은 정묘호란 때 인조가 몽골과 형제국으로 화친을 맺은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며임진강과 한강하류가 합류되는 요새지다동남쪽 해안에는 후애,분오리,미루지,장곶돈대와 후포항선착장과 선수,굴암,건평돈대가 있고 삼별초항쟁비가 있는 망양돈대와 삼암,계룡,망원,무태돈대 등 수많은 유적지가 깔려있다강화본섬에서 떨어져 나간 석모도와 교동도 등 수많은 새끼 섬들이 에워싸고 있고 간척지가 발달되어 한 해 농사로 7-8년의 식량을 해결 할 수 있는 수원이 풍부한 식량의 보고지다일몰 때면 섬과 섬 사이로 노을이 장관을 이뤄 하룻밤을 유숙하고 싶고 다시 가보고 싶은 강화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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