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연가(戀歌)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3/07/07 [10:15]

황혼의 연가(戀歌)

새만금일보 | 입력 : 2023/07/07 [10:15]

 

 

세월이 가는 것이 노인의 눈으로는 훤히 보이고, 청년은 늙는 게 안 보인다고 했다. 고려 충렬왕 때 성리학의 대가인 우탁(禹倬1262-1342)은 무정한 세월을 이렇게 노래했다.

 

<한손에 막대 잡고 또 한손에 가싀 쥐고

늙는 길 가싀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드니

백발이 제 몬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우탁-

 

어느새 미수(米壽)를 지나 망구(望九)의 나이가 코앞에 들어선 J형은 오늘도 장부를 꺼내놓고서 침침한 눈으로 셈에 여념이 없다. 이제 쉴 만도 한데 몸은 늙어 거동이 불편하지만 정신만은 또렷하여 100세 장수를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젊어 이래 황금을 찾아 쫓더니만 가난이란 꼬리표를 잘라 졸부가 되었고, 상당한 재산을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남겨, 이제 서산에 걸린 해처럼 아름다운 노을에 황혼의 노래를 부를 때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근검절약이 몸에 배었는지 아니면 자린고비 근성을 버리지 못했는지 초라한 식탁과 사는 것은 3류 인생만도 못하다. 어쩌다가 새로운 음식을 만나면 그렇게도 맛있게 먹었다. 노년에 친구와 이웃과의 나누는 재미를 모르는 그는 견딜 수 없는 고독이란 도가니에 갇혀버렸다. 시장에 가면 펄펄 뛰는 생선과 반찬가게에 가면 맛있는 젓갈이며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좋은 세상이다. 잘 먹고 간 얼굴은 때깔도 좋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제 남은여생 자기를 위해 맛있는 음식도 사먹고 돈 좀 쓰고 가시라고 권해도 한귀로 흘러 버린다. 수억씩 나누어준 딸자식 며느리들은 부모 간병은 뒷전이고 돌봄이 간병인 에게 만 맡겨놓고서 무관심의 도가 더하는 것 같다. 늙고 병들면 자녀에게 의탁할 시대는 지나 노후에 여유가 있으면 좋은 노인시설에 가는 것이 천국이라고 들 한다. L이란 선배가 서울에서 홀로 귀향을 하였는데, 사실상 가족들의 외면으로 유배를 온 것이다. 그 이유로는 세상에서 가장 몹쓸 병 치매로 인해 어제까지만 해도 정담을 나눴는데, 자기 집에서 물건을 훔쳐간 고약한 도둑놈이라고 모함을 하고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는 충격적인 행동에 가는 세월을 탓하여 무엇 하랴. 지금은 고인이 된 성품이 온화하고 양심적인 교육가 B라는 분이 바다처럼 드넓은 호숫가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 노후를 잘 보내다가 어느 날 치매에 걸려 자기 아내도 자식도 몰라보는 중증으로 도져 몇 년 살다가 세상을 허무하게 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넥타이와 정장을 하고서 학교에 출근을 한다면서 하염없이 거리를 헤매는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효심이 남다른 자식들과 아내의 가슴은 숯검정이 되었다. 세기적인 명화 벤허의 주인공 ‘찰톤 해스톤’도 치매로 화려한 은막을 마감했다. 인생의 과정을 생노병사(生老病死)라고 했던가. 불가사의의 만리장성을 쌓은 천하의 권세를 거머쥔 중국의 진시황도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고 지하궁전 도용갱을 만들어, 사후 왕 노릇 하려던 그도 49세에 죽었고, 불란서의 유명한 화가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려 한 때 파리를 뒤 흔든 ‘피카소’는 92세 장수를 하면서 일곱 여자와 결혼을 하여 그야말로 황혼의 연가를 구가했는데 그것도 한 순간의 꿈과 같았다는 고백이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은 영원할 수가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들은, 산다는 것은 죽음을, 죽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슬픈 이별과 만남이 반복적으로 교차한다. 또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 요즘 세상은 유물주의가 판쳐 젖 먹던 아이에게 5만원 권을 쥐어주면 울음을 그친다는 속어처럼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보여 인간성 상실시대라고 한다. 한평생을 지내놓고 보면 즐겁고 기쁜 날 보다 부족하고 후회스런 날을 누구나 기억에서 지을 수가 없다. 그렇게 화려하게 떠올랐던 인생의 젊음도 서산에 기울면 미련 없이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도둑같이 찾아온 죽음, 그 영혼이 염라대왕 앞에 갔다. 염라대왕 왈, “세상에서 잘 놀다가 왔느냐?”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대왕님 아까운 돈을 금괴에 가득 담아놓았을 뿐  쓰지도 못하고 와 후회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황천길은 그렇게 많은 노자 돈도 필요치 않다. 그래 다시 세상에 나가 다 쓰고 오되 장례비조로 500만원만 남겨 놓고 오너라.”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했다. 각자 생각하는 대로 산다지만 죽을 때는 다 내려놓고 빈손으로 떠나가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유달리 자식만 위하다가 노후대책 없는 빈곤을 자처한다고 한다. 남은여생 지금 이시간이 가장 젊고 행복한 순간으로 알고 살아 숨 쉴 때 가까운 이웃 친구와 팥죽이라도 한 그릇 나누며 못다 한 정담과 황혼의 연가를 불러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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