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빛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3/10/05 [10:56]

노년의 빛

새만금일보 | 입력 : 2023/10/05 [10:56]

 

 

 

정년을 하고나니 서울생활이 너무 답답하다며 귀소본능에 따라 새들도 죽을 때 제 둥지를 찾는다는데인간으로써 마땅히 태어난 고향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 한다면서 선배가 귀향을 하였다노년에 글동무로 친구가 하나 생겨 내심 반가웠다몇 차례 만나 음식도 나누고 사적지 답사도 같이 가고 재미있는 담론도 나눴다그런데 예전과 달리 옷 입는 품새와 행동거지가 달랐다음식을 먹을 때도 자기 입에 맞는 반찬만을 독식하고 때가 낀 구겨진 바지와 흙이 묻은 찢어진 운동화를 신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녀 세상을 초월한 것처럼 보였다그가 홀로 사는 아파트를 방문하였다방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청소가 안 된 주방이며 이부자리가 아무렇게나 방구석에 뭉개져 있었다냉장고를 열어 봤더니만 썩은 고기 뭉치와 오래된 식재료가 거반 상해 있었다주방의 냄비는 시꺼먼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선배님 냉장고에 있는 상한 고기를 버려야 합니다.’ 비닐봉지에 싸서 치웠다시꺼먼 냄비도 세제로 깨끗하게 닦아 놓았다L선배님학교에서 청소를 잘하라고 학생들에게 훈시한 적이 있지요아침에 일어나면 제일먼저 하는 일로 방안 청소와 주방정리부터 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감히 선배한테 이것저것 가르치려 드는 말을 함부로 하고 말았다그 후 한 주일이 흘렀다나는 충격적인 문자를 받았다000 내 집에 와서 훔쳐간 과일칼과 고기 가져와라안 가져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너 같은 도둑놈은 처음 봤다.  처음 만났을 때 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결국에는 그가 치매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래도 예부터 잘 지낸 우정이 쌓인 터라 잘 아는 후배 사회복지사와 함께 그의 병세가 어느 정도 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방문했는데 집에 없었다그 후 1개월이 지났다전화가 왔다우리 만나서 점심이나 같이하자는 것이다L선배님 하나만 물어봅시다과일칼과 고기를 내가 훔쳐갔다고 문자 보낸 적 있습니까?’ 전혀 기억 안 나고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며칠 후에 J후배한테서 연락이 왔다단란주점에서 L선배와 술잔을 나누고 있는데 합석을 하자는 것이다내가 끼었다가 자칫 치매환자라는 것을 실토하기라도 하면 L선배에게 누가 될까봐 사양 하였다. L선배와의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서울에 사는 가족에게 조목조목 편지를 써 보냈다. L선배의 서울 집에는 사모님과 사회적으로 잘 성장한 3남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데도 시골 고향에 유배를 온 것 같다치매에는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데 이렇게 방치하다니 안타까움만 더해 갔다어느 병원에 갔더니만 치매환자가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에 1명꼴 이라는 경종의 패를 써 붙였다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병이 치매라는데 그렇다면 나도 조만간 치매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다가끔씩 지인의 부음이 날아든다중학 동기 친구부인이 세상을 떴다이친구도 귀향을 하여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텃밭에 채소며과일나무를 심어 이 친구 저 친구에게 나누는 재미로 살고 있다그런데 발인 날에 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선산에 매장을 하는데 운구를 도와 달라는 것이다마침 바쁜 일이 있어 갈 수 없어 미안하다고 하였다그러면 옆집 친구라도 보내 달라는 것이다글쎄 내가 못 가는데 그 친구 보고 가라고 하기가 멋 적고그리고 그 친구는 허리를 두 번씩이나 수술하였고 관절염으로 활발하지도 못하다는 사정을 말해 주었다다음날 마음에 걸려 운구하는데 사람이 부족하지 안했느냐고 K친구 동생에게 물의니 가족과 함께 잘 마쳤다는 것이다며칠 후 위로 차 그 친구 집을 방문하였다그런데 예전과 달리 그렇게 반기는 표정이 아니었다그러던 중 내가 갑작스런 맹장염으로 수술을 하고 10일 만에 퇴원을 하였다남도에 사는 옛 친구가 쾌유를 빈다며 그 먼 곳에서 한달음에 한약재를 사들고 왔다“ 그 친구 부인 떠나보내고 난 후 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더군...” 글쎄 사정이 있어 못 간 것과 옆집 친구는 그렇게 각별한 사이도 아니고 몸도 불편한 그에게 연락 안한 것에 섭섭해 하다니친구 간에도 예의가 있지 않는가친구를 존경은 못하여도 아낄 줄 알고 위할 줄을 알아야 하네그 친구 자기 마누라 세상 떠나보내고 홀로되니 얼마나 허통하고 허망한 맘 오죽하겠는가만이 친구 저 친구 만나 남을 원망하는 말만 늘어놓는다니... 그렇게 총명했던 그 친구도 세월 앞에는 어쩔 수 없나보다너나 할 것 없이 고령의 나이가 들면 망령을 피해 갈 수가 없고 세월의 무상함을 탓한들 다시 젊음을 되돌릴 수가 없는 노릇이다독일의 대 문호 괴테의 시 ‘5월의 노래’에 노년은 아름다운 빛을 발 할 수 있어야 하고하루 빛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석양의 빛이라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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