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평생 어느 때가 가장 행복한가를 물었을 때 부모의 슬하에 있던, 어린아이 때라고 답한다. 형제가 많고 가난 속에서 헐벗고 먹을 것이 부족한 때에 태어났어도, 그때 그 시절을 잊지 못 하고 달콤한 향수처럼 추억에 젖는다. 예수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져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어린아이를 안아주며 사랑하고 칭찬하였다. 우리 인간은 성장해 갈수록 욕심과 사특邪慝하고 간교한 마음에 사로잡혀 알게 모르게 죄를 많이 짓는다. 어린아이는 천진난만하고 순전무구純 全無垢한 티 없이 맑은 마음으로 평안을 누린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천사의 마음이라고 한다. 반면에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고아나 과부를 도우라고 한, 예수의 측은지심은 지금까지도 우 리에게 각별한 교훈을 준다. 농경사회가 급변하여 산업화, 정보화, 아이티 첨단과학의 시대를 맞아 핵가족화는 물론 홀로 사는 독신 남녀가 늘어나고 있다. 왜 그럴까. 지난날에 비하면 지 금은 몇 배나 잘살고 편리한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나 손전화기, 인터넷 등 최첨단 물질문명을 누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일제의 수탈과 압박으로부터 해방된 지 2년 후에 태어나 민족의 비극인 6.25라는 동족상잔의 참화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밤이면 불빛이 새 어 나는 호롱불을 끄고서 쥐 죽은 듯 자야 했고, 낮에는 온 가족이 두터운 솜이불을 뒤집어 쓰고서 호주기(호주산 전투기)의 폭격이 무서워 벌벌 떨어야 했다. 우리 집에서 200m정도 떨어 진 방죽골 박씨가 밤이 되어 부친 제사를 지내느라 아궁이에 불을 지폈는데 호주기가 날아와 기간 단총을 쏘아댔는데, 외양간의 소가 얼마나 놀랐는지 고삐 줄을 끊고서 천길만길 뛰어다 녔다. 낮이면 호주기가 우리 집 낮은 초가지붕 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날 때마다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 손을 흔들며 ‘우리나라가 이긴다’며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맥아더’사령관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들이 북으로 도망을 치니, 동네 어른들은 나를 어여뻐 했다. 우리 인 간을 영적인 존재라고 한다. 철모르는 어릴 때 철새와 같은 동물 감각이 뛰어나다고 했다. 독 일의 철학자 니체(1844-1900)는 인간의 성장과 정신 발전 단계를 낙타와 사자와 어린아이, 세 단계 시기로 구분했다. 그 첫째로 낙타의 시기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수행하는 단계며, 두 번째로 사자의 시기는 그 의무를 부정해도 새로운 창조를 목표로 진정한 자유의지 로 행동한다. 세 번째로 어린아이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최상의 시기라고 했다. 어린 아이는 낙타와 사자의 단계를 밟은 뒤에 창조성이 넘치는 정신 단계를 지향, 천진한 어린아이 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은 대지의 온갖 종류의 곤충과 식물을 관찰하 며 논다. 아이들은 대지에 생명의 고향이 있다는 걸 배우지 아니해도 알고 있다. 37세에 요절 한 일본의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미와자와 겐지(宮澤賢治1896-1933)’는 <은하철도의 밤>은 그의 대표작이며, 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의 원작으로 오늘날까지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어린애와 같은 천진한 마음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는 농업학교 선생을 그만두고 가난한 농민을 위한 농업과학을 연구, 보급하였으며, ‘흙에 사는 모든 것을 사랑하면 대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Bcheiard 1844-1962 )는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제시했는데, 그의 저서<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대지, 그리고 의지의 몽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지를 접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의지가 되살아난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그 감각으로부터 전해지는 기쁨을 사랑한다.’라고 했다. 펄벅의 대지大地에서도 왕룽이라는 남자 주인공이 어린 자식을 많이 낳아 날마다 땅을 파고 흙에서 얻은 곡식과 열매 를 먹으며 대가족을 이루며 대지와 함께 사는 장면이 그렇게도 정겹다. 1919년 3.1 독립 만 세 때 천도교 손병희 교령의 사위 소파 방정환이 어린이를 사랑하자며 ‘어린이날’을 제정하게 된 이유로는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차세대는 어린이에게 있으므로 어린이를 보 호하고 사랑하자고 민족운동 차원에서 나섰다. 지금 시골 농촌에는 어린아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인구절벽으로 지역소멸은 물론 황량한 대지는 날이 갈수록 빈집만 늘어나 황폐되 어 가고 있다. 모든 공산품 생산수단과 기계와 인구집중은 혼탁한 도시로 몰려들어 농촌은 흙 을 밟는 어린아이는 고사하고 이웃과 대화할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대지는 어머니 품 안 같 은 존재이자 우리 생명을 잉태케 한 생명력 그 자체이다. 땅을 밟지 못하면 심신은 굳어지고 악취와 탁한 공기를 마시는 도시민들은 대지를 좀먹는 불행의 씨앗이 되고 있다. 흙과 함께하 는 농촌, 꿀을 따는 벌 나비가 잉잉대고, 푸나무와 시냇물 소리와 온갖 산새들의 노래를 듣는 정든 고향 산천, 그 넓은 대지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루소의 말처럼 ‘자연으로 돌아가라’ 는 말이 새삼 아름답게 들린다. <저작권자 ⓒ 새만금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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