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해저터널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21/02/26 [08:38]

한,일 해저터널

새만금일보 | 입력 : 2021/02/26 [08:38]

 

 

국힘당은 정책으로 한,일 해저터널을 내세웠다. 김종인 대표가 4세 때 1944년 부친(김재열)이 지병으로 별세한 이후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이었던 할아버지 김병로(1887-1964) 선생의 품에서 컸다. 그런 연유에서 김 대표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조부 김병로 선생을 꼽고 있다.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만화 도서로 ‘정의를 바로세운 우리나라 첫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라는 제목으로 별세 50주년 기념으로 2014년 발간한 바 있는데 요즘 다시 거론되고 있다. 김종인 대표의 정치이력을 볼 것 같으면 11,12,14,17,205선 국회의원으로 전두환 국보위부터 여야를 들락거리는 모두 비례대표의원을 지냈으며 뮌스터 대학 경제학박사 경제통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박근혜, 문재인 두 대통령 킹메이커 역할을 한바 있는데, ‘박근혜는 그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다가 동네 건달 식 정치를 하고 있다. 문재인은 천하가 자기 것 인 줄 알고 방자하게 굴고 겉과 속이 다르며 주변 인간관계가 복잡한 사람이다.’라고 비판했다. 김종인은 정치철새처럼 국힘당으로 거취를 옮겨 4월 보궐선거와 당정을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그는 국힘당론으로 한, 일 해저터널을 들고 나왔는데, 일본과 경제통상화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한,일 해저터널을 뚫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비용만도 100조원이 들며 부산과 규슈까지 총연장231km며 해저는 128km로 공사기간만도 15년에서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일 해저터널을 만들게 될 시 추후에 통일이 되면 연결될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발, 종점은 일본의 몫이다. 또한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관광객의 수보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관광객의 수가 훨씬 많기 때문에 우리의 관광산업에 있어 득을 볼 가능성도 매우 적다고 분석되고 있다. ,일 해저터널의 구상은 1917년 일제 강점기 때 ‘고이소 구니아키’의 제안으로 부터다. 1941년 쓰시마 지질검사와 더불어 규슈방향으로 600m시험 굴착이 있었고, 1942년 남만주에서 싱가포르까지 8000km에 이르는 철도망을 일제는 구상하였다. 노태우에 이어 2000년도에는 김대중도 일본과 우리나라를 거쳐 유럽까지 철도 연결설을 폈으나 2011년 국토해양부는 건설비 100조에 해당하는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조사된바 있다. 홍익표의원은 국힘당의 한일해저터널 구상은 일본경제를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라고 하였다. 또한 한국의 철도궤는 표준궤이며 일본은 협궤로 다를 뿐만 아니라 20165.8의 경주 지진으로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한,일 해저터널이 된다면 부산항은 지나치는 정거장에 불과하여 항구로써 매우 한적할 것이며 철도의 시발점인 일본 규슈와 종점인 러시아, 유럽으로 일본이 많은 득을 볼 것이라는 전문가의 분석이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풍신수길이 명나라를 치려니 길을 빌려달라는 정명가도와 정한론(征韓論)을 편 요시다쇼인의 숭배자 극우정권 아베나 스가 총리는 한국과 우호관계를 깬 역사왜곡으로 독도가 일본 땅이라며 적대시 하는 한 우리나라는 한일 해저터널을 뚫어주어 일본에게 길을 내줄 이유가 없다. 김종인의 조부는 일제 때 청백리 판사로써 독립운동가들을 비호하는 판결을 한 민권운동가요 독립투사였다. 김병로의 손자인 김종인은 일본이란 존재를 누구보다도 잘 알 것으로 보는데 한일 해저터널을 국민 여론조사도 아니한 채 당론으로 내 세우는 것은 무슨 속내일까. 프랑스와 영국 간 도버터널(50km)은 쌍방 간 서로 원하여 뚫었지만, 항구의 효율성이 떨어졌다는데, 자국의 목포 제주 간 해저터널도 심사숙고해볼 일이다. 고집쟁이 이승만도 대쪽 같은 정의로운 가인 김병로를 두려워했다. 과연 김종인도 조부 가인을 진정으로 존경한다면, 권력과 당리당략에 앞서 정치적인 양심과 소신을 펴야 할 것이다. <법관이 공정하고 청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 같은 필부필부는 그렇게 못 하니 당신들만이라도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부모로서 자식에게 강조하는 몇 가지 가치가 있는데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사람이 되거라> 가인 김병로의 유언 같은 말이다. 가인은 안창호, 김성수, 이인 등은 물론이고 홍명희, 허헌, 여운형 등 좌파, 중도파 ,우파 등 모두를 껴안았던 정치적으로 통합노선을 추구했던 인물이다. 김종인 역시 가인의 피를 이어받아 신군부 전두환 국보위시절과 여,야를 불문하고 바른 정치를 하겠다고 뛰어들은 것으로 본다. 가인은 일제강점기 때 일제로부터 성씨개명을 강요받자 법관생활을 그만두고 경기도 이천 산촌에서 은둔을 한 지조 높기로 유명한 분이다. 해방 후 김병로 선생은 한국 법제, 사법, 법률, 윤리의 초석을 놓은 법조계의 거인이며 청백리였다. 김종인 대표는 조부의 명예를 걸고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한,일 해저터널을 추진코자 당론으로 내 세웠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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