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하고나니 서울생활이 너무 답답하다며 귀소본능에 따라 새들도 죽을 때 제 둥지를 찾는다는데, 인간으로써 마땅히 태어난 고향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 한다면서 L 선배가 귀향을 하였다. 노년에 글동무로 친구가 하나 생겨 내심 반가웠다. 몇 차례 만나 음식도 나누고 사적지 답사도 같이 가고 재미있는 담론도 나눴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옷 입는 품새와 행동거지가 달랐다. 음식을 먹을 때도 자기 입에 맞는 반찬만을 독식하고 때가 낀 구겨진 바지와 흙이 묻은 찢어진 운동화를 신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녀 세상을 초월한 것처럼 보였다. 그가 홀로 사는 아파트를 방문하였다. 방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청소가 안 된 주방이며 이부자리가 아무렇게나 방구석에 뭉개져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 봤더니만 썩은 고기 뭉치와 오래된 식재료가 거반 상해 있었다. 주방의 냄비는 시꺼먼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선배님 냉장고에 있는 상한 고기를 버려야 합니다.’ 비닐봉지에 싸서 치웠다. 시꺼먼 냄비도 세제로 깨끗하게 닦아 놓았다. ‘L선배님? 학교에서 청소를 잘하라고 학생들에게 훈시한 적이 있지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먼저 하는 일로 방안 청소와 주방정리부터 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감히 선배한테 이것저것 가르치려 드는 말을 함부로 하고 말았다. 그 후 한 주일이 흘렀다. 나는 충격적인 문자를 받았다. “000 내 집에 와서 훔쳐간 과일칼과 고기 가져와라. 안 가져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 너 같은 도둑놈은 처음 봤다.” 처음 만났을 때 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결국에는 그가 치매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예부터 잘 지낸 우정이 쌓인 터라 잘 아는 후배 사회복지사와 함께 그의 병세가 어느 정도 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방문했는데 집에 없었다. 그 후 1개월이 지났다. 전화가 왔다. 우리 만나서 점심이나 같이하자는 것이다. ‘L선배님 하나만 물어봅시다. 과일칼과 고기를 내가 훔쳐갔다고 문자 보낸 적 있습니까?’ 전혀 기억 안 나고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며칠 후에 J후배한테서 연락이 왔다. 단란주점에서 L선배와 술잔을 나누고 있는데 합석을 하자는 것이다. 내가 끼었다가 자칫 치매환자라는 것을 실토하기라도 하면 L선배에게 누가 될까봐 사양 하였다. L선배와의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서울에 사는 가족에게 조목조목 편지를 써 보냈다. L선배의 서울 집에는 사모님과 사회적으로 잘 성장한 3남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데도 시골 고향에 유배를 온 것 같다. 치매에는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데 이렇게 방치하다니 안타까움만 더해 갔다. 어느 병원에 갔더니만 치매환자가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에 1명꼴 이라는 경종의 패를 써 붙였다.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병이 치매라는데 그렇다면 나도 조만간 치매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다. 가끔씩 지인의 부음이 날아든다. 중학 동기 친구부인이 세상을 떴다. 이친구도 귀향을 하여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텃밭에 채소며, 과일나무를 심어 이 친구 저 친구에게 나누는 재미로 살고 있다. 그런데 발인 날에 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선산에 매장을 하는데 운구를 도와 달라는 것이다. 마침 바쁜 일이 있어 갈 수 없어 미안하다고 하였다. 그러면 옆집 친구라도 보내 달라는 것이다. 글쎄 내가 못 가는데 그 친구 보고 가라고 하기가 멋 적고, 그리고 그 친구는 허리를 두 번씩이나 수술하였고 관절염으로 활발하지도 못하다는 사정을 말해 주었다. 다음날 마음에 걸려 운구하는데 사람이 부족하지 안했느냐고 K친구 동생에게 물의니 가족과 함께 잘 마쳤다는 것이다. 며칠 후 위로 차 그 친구 집을 방문하였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그렇게 반기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내가 갑작스런 맹장염으로 수술을 하고 10일 만에 퇴원을 하였다. 남도에 사는 옛 친구가 쾌유를 빈다며 그 먼 곳에서 한달음에 한약재를 사들고 왔다. “ K 그 친구 부인 떠나보내고 난 후 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더군...” 글쎄 사정이 있어 못 간 것과 옆집 친구는 그렇게 각별한 사이도 아니고 몸도 불편한 그에게 연락 안한 것에 섭섭해 하다니, 친구 간에도 예의가 있지 않는가. 친구를 존경은 못하여도 아낄 줄 알고 위할 줄을 알아야 하네. 그 친구 자기 마누라 세상 떠나보내고 홀로되니 얼마나 허통하고 허망한 맘 오죽하겠는가만, 이 친구 저 친구 만나 남을 원망하는 말만 늘어놓는다니... 그렇게 총명했던 그 친구도 세월 앞에는 어쩔 수 없나보다. 너나 할 것 없이 고령의 나이가 들면 망령을 피해 갈 수가 없고 세월의 무상함을 탓한들 다시 젊음을 되돌릴 수가 없는 노릇이다. 독일의 대 문호 괴테의 시 ‘5월의 노래’에 노년은 아름다운 빛을 발 할 수 있어야 하고, 하루 빛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석양의 빛이라 노래했다. <저작권자 ⓒ 새만금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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